범죄 드라마를 보면 결국 범인을 잡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허수아비」를 다 보고 난 뒤, 저는 카타르시스 대신 불편함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범인 한 명이 아니라 그를 만들어낸 구조가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이었기 때문입니다.

허위자백과 국가폭력, 드라마가 건드린 것들
일반적으로 범죄 수사 드라마는 수사관이 단서를 모아 범인을 특정하는 구조를 따릅니다. 그런데 「허수아비」는 그 구조를 비틀어, "잡힌 범인이 진짜 범인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꺼냅니다.
허위자백(false confession)이란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 협박, 수면 박탈 등의 압력으로 인해 실제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는 진술을 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드라마에서 이기범이 경찰에게 장기간 감금·폭행을 당한 끝에 자백하는 장면은 이 개념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예전에 어떤 조직에서 "그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의 공기가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걸린 문제가 회의실 안에서 순식간에 "절차"로 납작해지는 그 감각이요.
드라마는 단순히 악한 개인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불법 체포와 감금, 진술서 대필, 고문을 통해 얻은 증거가 법정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따라가며 공소시효(statute of limitations, 즉 범죄 발생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지는 제도)와 재심(retrial, 이미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경우 다시 재판을 여는 절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까지 짚어냅니다. 법정에서 과거 고문 피해자가 손으로 직접 특정 인물을 지목하고, 그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근거"로 인정되는 장면은 그 어떤 액션 장면보다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대목은 경찰과 검사가 서로의 실적을 위해 공조하는 구간이었습니다. 연쇄 살인 사건의 빠른 종결이 개인의 정치적 이해와 맞닿아 있고, 그 결과 무고한 사람이 2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실제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사 단계에서 발생하는 강압적 신문은 허위자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며, 이는 재심 사건의 상당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패턴입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이 드라마가 건드리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사권 남용과 불법 감금이 어떻게 허위자백을 만들어내는가
- 법정에서 증거 능력(admissibility of evidence, 즉 특정 증거가 재판에서 유효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의 여부)이 실제로 판결을 좌우하는 구조
- 권력자의 개인적 이해가 수사와 기소 방향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 언론과 내부 고발이 진실 규명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드라마의 강점과 아쉬움, 솔직히 말하면
「허수아비」의 가장 큰 강점은 프로파일링(profiling, 범죄자의 심리적·행동적 특성을 분석하여 용의자를 좁혀가는 수사 기법)을 단순한 장르 도구로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강태주라는 인물은 범인을 추적하는 동시에, 시스템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허수아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중 구조는 국내 범죄 드라마에서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영웅이 악당을 잡는다"는 단선 구조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는 모방범죄(copycat crime, 기존 범죄 수법을 모방하여 저지르는 범행)의 가능성을 법정에서 공방으로 끌어오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여기서 모방범죄란 범죄의 구체적 수법이나 세부 사항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따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건 정보 유출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법의학 전문가가 "이건 직접 시신을 보지 않았으면 따라 할 수 없는 수법"이라고 증언하는 장면은 저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권력형 비리를 다룬 드라마는 악역을 노골적으로 폭력적인 인물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허수아비」도 그 관행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실제 권력의 폭력은 인사 발령, 예산 조정, 기록 삭제, 언론 조작처럼 훨씬 더 교묘하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제 경험상 그런 종류의 폭력은 드라마화하기가 훨씬 어렵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입니다.
또한 증거가 연달아 등장하는 구간에서 "그동안 왜 아무도 이걸 몰랐나"라는 의문이 반복됩니다. 이는 극적 긴장감을 위한 설정이지만, 시청자가 현실 수사의 구조적 한계를 체감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presumption of innocence,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 피의자를 무죄로 간주하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이 현실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그 구조적 이유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수사 과정 인권침해 실태 조사에 따르면, 수사 단계에서의 피의자 권리 침해는 여전히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허수아비」는 범인을 잡는 드라마가 아니라, 범인을 만드는 구조를 묻는 드라마입니다. 보고 나서 "시원하다"는 감정보다 "내가 사는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누군가를 허수아비로 만드는가"라는 불편한 경계심이 남는다면, 그건 이 드라마가 제 역할을 다 한 것입니다. 비슷한 주제에 관심 있다면 실제 재심 사례나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도 함께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드라마에서 느낀 불편함이 현실에서도 어떤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