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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마이라 드라마 리뷰 (사회구조, 복수서사, 진실조건)

by haramsolution 2026. 5. 12.

복수가 끝나면 정의가 완성되는 걸까요? 〈키마이라〉를 보는 내내 저는 그 질문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범인이 잡히고 악인이 처벌받는 순간에도,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 드라마가 건드리는 건 단순한 연쇄 폭발 사건이 아니라, 그 폭발을 35년 동안 가능하게 만든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키마이라 드라마 리뷰
키마이라 드라마 리뷰

사회구조: 고문, 은폐, 그리고 반복되는 폭발의 배경

〈키마이라〉의 사건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태삼 케미컬에서 해고된 노동자 이상우가 키마이라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고, 고문치사(拷問致死)로 숨집니다. 고문치사란 수사 과정에서 신체적 가혹 행위가 원인이 되어 피의자가 사망하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 유서는 조작된 진술서였고, 수사 책임자 이민기 검사와 담당 형사 배승관의 이름이 기록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35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기억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인권 유린 사례는 드라마 속 설정이 아니라 실제 역사 기록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권위주의 정권 시기 피의자 고문은 일상적인 수사 관행으로 활용되었으며, 피해자 상당수는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드라마 속 TH5는 이 구조를 더 촘촘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TH5란 태삼 케미컬이 개발한 공업용 화학 특허 물질로, 이 개발 과정에 관여한 연구원들이 35년 전 연쇄 살인의 피해자들과 동일 인물입니다. 즉 기업의 이익, 특허, 권력기관의 거래가 한 사람의 죽음을 은폐하고 반복적인 폭발로 되돌아온 셈입니다. "사건은 끝났는데 사람은 끝나지 않는다"는 감각을 저는 이 구조에서 가장 강하게 느꼈습니다.

복수서사: 키마이라는 괴물인가, 피해자인가

〈키마이라〉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키마이라(Chimaera)에서 유래합니다. 키마이라란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가진 복합 생명체로, 여러 존재가 하나로 뒤섞인 괴물을 상징합니다. 드라마는 이 이름을 단순한 코드명이 아니라 인물 구조 자체에 적용했습니다. 35년 전 진짜 키마이라라는 TH5 연구원 류성인(은수)이었고, 현재의 키마이라는 이상우의 딸 효경이었으며, 다음 키마이라는 또 다른 피해자 가족 형국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시청자들 사이에 꽤 팽팽한 시각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효경의 행동을 정당한 복수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효경이 서연태에게 죄를 묻고 죽음을 각오하는 장면은 감정적으로는 통쾌하지만, 동시에 그 선택이 "진실을 알 수 있는 조건"을 본인의 희생으로 대신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드라마가 진짜 묻는 건 복수의 정당성보다, 왜 진실을 말하기 위해 누군가가 죽어야 했는가입니다. 이 질문은 저에게도 꽤 오래 남았습니다. 직장에서, 관계에서,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이 비밀이 되는 경험은 드라마 속 거대한 음모만큼 극적이지 않아도 꽤 흔합니다. 권력 앞에서 "증거가 없잖아"라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쉽게 무력화시키는지, 저도 비슷하게 체감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키마이라〉가 복수극으로서 놓치지 않은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피해자가 복수자가 되는 서사는 세대를 넘겨도 반복된다는 것
  • 기억상실(섬망 증세)이라는 장치를 통해 진실이 '억압'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
  • 서연태, 이민기, 배승관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했지만, 결국 같은 구조의 공범이었다는 것

진실조건: 이 드라마가 정말 묻는 것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키마이라〉가 단순한 범인 추적 스릴러로 끝날 줄 알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는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왜 진실이 이렇게 오래 묻혔는가"를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이라는 기법이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프로파일링이란 범죄 현장의 증거, 행동 패턴, 심리 상태를 종합해 범인의 특성을 추론하는 수사 기법입니다. FBI 출신 테러 전문가 유진이 폭발 방식과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과정은 극의 신뢰성을 높여줬습니다. 다만 저는 화학 폭발 메커니즘 설명이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보다 기술 쪽으로 무게가 실리면서, 정작 인물의 내면이 얇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지연 발화(Delayed Ignition)도 극 중 핵심 장치로 자주 등장합니다. 지연 발화란 점화원과 가연물이 즉시 반응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폭발이 발생하는 방식으로, 범인이 현장을 빠져나간 뒤 폭발이 일어나도록 설계하는 데 활용됩니다. 이 장치 덕분에 범인이 늘 현장에 없다는 알리바이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드라마는 이를 단순한 트릭이 아니라 "진실을 지연시키는 권력의 작동 방식"과 은유적으로 연결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중층 구조는 몰아서 볼 때보다 한 회씩 곱씹으며 볼 때 훨씬 잘 보입니다.

한 가지 비판적으로 보자면,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혈연 중심의 반전—효경이 이상우의 딸, 이중엽이 이상우의 아들—에 집중하면서 구조적 가해자(시스템)보다 특정 악인에게 책임이 좁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반전이 몰입을 도운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것이 동시에 "악인만 처벌되면 끝"이라는 착시를 남길 수 있다고 봤습니다. 문화평론 분야에서는 이를 개인화 오류(Personalization Fallacy)라고 부릅니다. 개인화 오류란 사회 구조적 문제를 특정 개인의 악의 탓으로만 돌림으로써 시스템 비판이 약화되는 현상입니다. 〈키마이라〉는 그 경계선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간 작품입니다(출처: 한국드라마학회).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저에게 가장 오래 남은 건 폭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그럴 놈"이라고 말하며 반성 없는 얼굴로 서 있던 배승관의 표정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무서웠던 이유는 그 얼굴이 드라마 밖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키마이라〉는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주면서도, 복수 이후에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또 다른 키마이라가 만들어진다는 경고를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투명한 수사, 독립적 감시 기구, 피해자 중심의 보상 체계가 없다면 이 이야기는 다른 얼굴로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보고 나서 불편한 쪽이 더 정직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2pDkfDX3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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