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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판사 리뷰 (여론재판, 포퓰리즘, 사법개혁)

by haramsolution 2026. 5. 17.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 그냥 통쾌한 사이다물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재벌에게 235년을 선고하는 장면, 갑질 재벌 2세에게 태형을 때리는 장면. 그런데 보다 보니 제 손이 자꾸 멈췄습니다. "나도 저 버튼 눌렀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게 불편했습니다.

악마판사 리뷰
악마판사 리뷰

버튼 하나로 유죄를 만드는 세상, 저도 거기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시범 재판의 핵심은 '정의여신 TK' 앱입니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으로 재판에 참여해 실시간으로 유죄·무죄를 투표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이 핵심으로 등장합니다. 포퓰리즘이란 대중의 즉각적인 감정과 요구에 호소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절차적 정의보다 감정적 동조가 앞서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설정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뉴스를 볼 때 저도 기사 본문보다 댓글 여론을 먼저 스크롤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 유죄야? 무죄야?"를 판단하기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지?"를 먼저 확인했던 겁니다. 드라마 속 시청자들이 검사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빨간 버튼을 마구 누르는 장면은, 그 습관의 극단적인 확대판이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문제이기도 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고, 감정적 반응과 사실 판단을 분리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의식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 역시 수년간 그 훈련을 하지 않은 채 뉴스를 소비해왔다는 걸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인정했습니다.

강요한이 첫 재판에서 주일두에게 피해자별 형량 합산 조항을 적용해 금고 235년을 선고하는 장면은 통쾌했지만, 저는 그 직후 이런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이 판결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이미 조작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강요한은 그 감정을 정확히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핵심 포인트:

  • 대중 참여 재판은 사실 확인보다 감정의 속도가 빠르다
  • 클릭 한 번으로 내린 판단은 번복하기가 심리적으로 어렵다
  • 통쾌함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연출에 참여하고 있다

강요한이라는 인물, 개혁인가 사냥인가

이 드라마에서 강요한을 읽는 열쇠는 사법 독립성이라는 개념에 있습니다. 사법 독립성이란 법관이 외부 권력이나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강요한은 겉으로 이 원칙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여론과 법무부 장관 차경희, 사회적 책임 재단의 지원이라는 삼각 구도 안에서 움직입니다.

제가 예전에 조직에서 "원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납득했는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원칙은 누군가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방패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강요한이 주일두 재판에서 "법대로 될 겁니다"라고 말할 때, 저는 그 목소리가 겹쳐 들렸습니다. 진짜 원칙인지, 결론이 정해진 원칙인지 처음에는 구분이 안 됩니다.

드라마는 강요한의 진짜 동기를 꽤 오랫동안 숨깁니다. 형 이삭이 성당 화재로 사망하고, 재단 사람들이 불타는 현장에서 자기 몸만 챙기는 걸 목격한 뒤 복수를 결심했다는 사실은 후반부에야 드러납니다. 그 전까지 그는 완벽한 카리스마와 정의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제가 권력입니다. 국민 여러분이 권력입니다"라는 연설은 실제로 들으면 설득됩니다. 문제는, 설득되는 내 감각이 그 말의 진위를 보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정당성 위기라는 문제가 고개를 듭니다. 민주주의의 정당성이란 권력이 시민의 동의와 절차적 과정을 통해 부여된다는 원칙인데, 포퓰리즘적 지도자들은 이 원칙을 형식적으로 준수하면서 실질적으로 우회합니다. 강요한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라고 말하는 순간마다, 그 국민의 뜻은 이미 그가 설계한 정보 환경 안에서 형성된 것입니다(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강요한의 첫 재판에서 증인 장기원의 내부 고발과 박사의 위증을 활용한 방식은, 조작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권력 앞에서 진실이 묻히는 구조를 역이용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반복되고 제도화될 때, 처음에 정의를 위해 설계된 도구가 정의를 독점하는 무기로 바뀝니다. 드라마는 그 전환의 순간을 태형 선고 장면에서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김가온이라는 존재, 그리고 우리가 붙잡아야 할 최소한

김가온은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그래도 절차는 있어야 한다"는 감각을 끝까지 놓지 않는 인물입니다. 법치주의(rule of law)라는 개념의 핵심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법치주의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법 위에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권력 행사는 사전에 정해진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가온이 강요한에게 "판사가 법을 어기면 안 된다"고 말할 때, 강요한은 "현실에 정의란 없어, 게임만 있을 뿐이야"라고 답합니다. 저는 이 대화가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솔직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요한의 말이 현실 감각에서는 옳게 들리지만, 그 말을 수용하는 순간 우리는 법치주의의 마지막 방어선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가온이 결국 강요한을 고발하는 장면에서, 저는 그를 비난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고발이 오히려 더 많은 피해를 만들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절차를 붙잡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나약함인지, 아니면 더 긴 싸움을 위한 선택인지는 드라마가 끝까지 단정 짓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사법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민들이 법원 판결보다 여론의 반응을 더 신뢰한다는 응답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이 수치는 드라마의 설정이 단순한 픽션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제도보다 감정의 속도를 더 믿기 시작할 때, 강요한 같은 인물은 허구가 아니라 수요가 됩니다.

이 드라마가 남긴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정의가 간절할수록, 정의는 더 쉽게 상품이 됩니다. 그리고 그 상품을 소비하는 우리의 클릭이, 어떤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묻습니다.

드라마를 다 본 뒤, 저는 한동안 뉴스 댓글을 먼저 확인하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멈춰봤습니다. 어렵지만, 그게 가온이 드라마 안에서 보여준 가장 작은 실천이었기 때문입니다. 〈악마판사〉는 통쾌한 순간 이후에 불편함을 남기는 드라마입니다. 그 불편함을 기억하는 것이, 이 작품을 제대로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SeBHMoxF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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