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랭스로 되돌아가다 (계급 수치심, 정체성, 노동계급 우경화)

by haramsolution 2026. 4. 12.

계급을 '탈출'했다고 느끼는 순간, 왜 더 불편해지는 걸까요? 저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설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말을 고르고, 화제를 고르고, 심지어 웃는 방식까지 다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그 불편함이 단순한 적응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개인 안에 새겨놓은 감정의 흔적이라는 걸 정면으로 파고드는 책입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
랭스로 되돌아가다

계급 수치심은 개인의 약점이 아닙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은 미셸 푸코의 전기 작가로 더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퀴어 이론(Queer Theory) 분야에서도 손꼽히는 학자죠. 퀴어 이론이란 성 정체성과 젠더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관점에서 권력 구조를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에리봉은 자신의 게이 정체성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발화하고 이론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30년 가까이 입을 닫고 있었던 문제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이 프랑스 랭스 외곽의 노동 계급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상류층 지식인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말투를 교정하고, 취향을 바꾸고, 가족의 직업을 묻는 질문이 나오면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과정은 의식적인 결정이라기보다 반사적인 생존 감각에 가깝습니다. 저도 어떤 자리에서 "부모님이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잠깐 숨이 멎는 듯한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으니까요.

에리봉은 이것을 계급적 아비투스(Habitus)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아비투스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정립한 개념으로, 계급적 환경이 몸과 감각에 새겨진 성향 체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어떤 계급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말하는 방식, 먹는 것, 여가를 즐기는 방법까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이 아비투스가 탈계급화 이후에도 얼마나 질기게 살아남는지를 에리봉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줍니다.

에리봉이 탁월한 지점은 이 수치심을 개인의 열등감이나 심리적 약점으로 환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수치심이 사회적으로 생산된다고 봅니다. 어떤 출신이 감춰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거죠. 저는 이 관점이 꽤 오랫동안 제 안에 남아 있던 무언가를 설명해 주었다고 느꼈습니다.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겹입니다

이 책이 다루는 정체성 교차성(Intersectionality)의 문제는 현대 사회학에서도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정체성 교차성이란 한 사람 안에 있는 여러 정체성의 요소들, 예컨대 계급·젠더·인종·섹슈얼리티 등이 서로 겹쳐지면서 복합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입니다.

에리봉은 스스로를 게이이자 노동 계급 출신으로 정의하면서, 이 두 정체성이 어떻게 다르게 취급되어 왔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론화하고 싸웠지만, 계급 정체성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 그리고 그 침묵 자체가 일종의 계급적 배반이었다는 인식이 이 책의 가장 서늘한 대목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저작 『구별짓기』는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합니다. 부르디외는 가난한 시골 마을 우체국 직원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 고등사범학교까지 올라간 인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이 운동 후 태국 음식이나 스시를 먹으러 가자고 할 때 본인은 감자가 든 스튜가 먹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회고록에 남겼습니다. 그때 느낀 건, 취향이 단순한 개인의 선호가 아니라 계급적 역사가 몸에 새겨진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에리봉과 부르디외는 이 지점에서 정확히 겹칩니다.

에리봉이 지적하듯 우리가 연애하고 결혼하고 친구를 사귀는 방식에도 이 취향의 계급 논리가 작동합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옷을 입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같은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의 차이가 관계망을 형성하고 계급을 재생산합니다. 문화 자본이란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으로, 경제적 자본 외에 교육·문화·예술적 지식과 소양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자원으로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모임에서 처음 접한 취향들을 "배워야 하는 교양"처럼 받아들이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것이 단순한 열등감이 아니라 문화 자본의 격차에서 오는 감각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핵심 포인트 정리:

  • 아비투스: 계급 환경이 몸과 감각에 새겨진 성향 체계. 탈계급 이후에도 지속됨
  • 정체성 교차성: 계급·젠더·인종 등 여러 정체성이 겹치며 복합적 경험을 생성
  • 문화 자본: 교육과 취향이 경제 자본처럼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자원으로 작동

노동계급 우경화, 그 분노는 어디서 왔을까

에리봉의 가족은 오랫동안 공산당을 지지하는 골수 좌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이들은 난민 반대, 인종 차별적 발언, 낙태 금지를 주장하는 국민 전선(현 국민 연합) 지지자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에리봉은 이것이 노동 계급의 비합리성이 아니라 좌파 정당의 실패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합니다. 에리봉이 인용하는 담론적 폭력(Discursive Violence)이라는 개념이 이 설명에서 핵심입니다. 담론적 폭력이란 언어와 담론을 통해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방식의 권력 행사를 의미합니다. 좌파 정당이 "불가피한 근대화"나 "개인적 책임" 같은 언어를 앞세우기 시작하면서 노동 계급의 현실적 고통을 표현할 집단적 언어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자신의 분노와 박탈감을 설명해 줄 언어가 없어진 사람들은 그 언어를 제공해 주는 곳을 찾게 됩니다. 그것이 혐오와 배제의 언어라 할지라도 말이죠. 에리봉은 국민 전선 지지표의 일부가 짓밟혀 왔다는 감각, 즉 존엄성에 대한 마지막 호소라고 해석합니다. 한국의 극우 집회나 미국의 트럼프 현상도 이 틀로 바라보면 꽤 다르게 읽힙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계급 배반 투표(Class Dealignment)라고 부릅니다. 계급 배반 투표란 경제적 이해관계상 자신의 계급에 불리한 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착각이나 선동의 결과가 아니라, 좌파 정당이 노동 계급과 형성하던 상징적 연대가 무너진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 여러 나라의 선거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들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출처: 한국정치학회).

필요한 건 "교양을 쌓아라"식의 훈계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겪는 박탈과 모멸을 공적 언어로 번역해 주는 정치와 교육의 역할입니다. 개인에게만 노력과 멘탈을 요구하는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수치심을 재생산할 가능성이 큽니다. 에리봉이 이 책에서 전하는 핵심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한 사회학자의 회고록이지만, 읽고 나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내가 감추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수치심은 어디서 왔는지. 익숙한 음식 한 그릇이 왜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지. 저는 그 깨달음이 저를 조금 덜 쫓기게 만들었습니다. 무겁지만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계급, 정체성, 정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 안에서 뒤엉키는지를 이토록 정직하게 쓴 책은 드뭅니다(출처: 교보문고 도서 정보).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UXogL3qdg0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haram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