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재벌가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검사'라는 설정만 보고 자극적인 전개를 기대했는데, 드라마 바벨이 실제로 계속 파고드는 건 사건의 진범이 누구냐가 아니라, "권력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사람이 어떻게 길들여지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보고 나서 마음이 가볍지 않은 드라마입니다.

권력구조: 거산그룹이 보여주는 서열의 언어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재벌 일가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일터에서 "왜 물어보냐, 시키는 대로 해라"는 공기를 마주했을 때의 감각이었습니다. 거산그룹이라는 조직은 극 중에서 가족 식사 자리에서도 모멸과 강요가 일상처럼 흘러갑니다. 수호가 입맛도 없는 음식을 억지로 삼키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 순간 주변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습니다. 권력 앞에서 침묵으로 동조하는 것, 그것 자체가 생존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가 구조적으로 흥미로운 건, 현숙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악역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유언장 위조라는 문서 위조죄(Document Forgery)를 저지르고, 헬기 사건의 배후를 조종하며, 킬러를 직접 고용합니다. 여기서 문서 위조죄란 법적으로 효력 있는 문서를 허위로 만들거나 변조하여 타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현숙의 모든 행위에는 일관된 논리가 있습니다. "거산은 내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위해 수호를 평생 조종해왔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태장이 원래부터 수호를 후계자로 정해뒀다는 진실을 알게 되는 장면은, 현숙이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려온 과정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드라마 속 권력 작동 방식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정보 독점: 태장의 실질적 의중을 현숙 혼자 장악하고 나머지 가족에게 흘리지 않음
- 감정 통제: 수호를 어릴 때부터 "엄마 말 들으면 다 해준다"는 방식으로 길들임
- 법적 수단 남용: 유언장 위조, 내부 첩자 활용, 킬러 고용 등 제도적 허점을 철저히 이용
- 언론 플레이: 민호 사망 이후 검찰 수사를 "끼워 맞추기식 수사"로 프레이밍(Framing)하여 여론 조성. 여기서 프레이밍이란 특정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지 설정하는 의미 구성 전략을 말합니다.
가정 폭력 피해자가 왜 즉시 도움을 청하지 않는지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의 상당수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의존, 사회적 고립이라는 세 가지 복합 요인으로 인해 탈출 시도를 포기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드라마 속 정원이 폭행을 당하면서도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한 이유가 정확히 이 맥락에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가 아니라, 제가 주변에서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도 "왜 나가지 않았냐"는 외부의 시선이 얼마나 사태를 단순화하는 질문인지 느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는 그 복잡한 맥락을 사건의 속도 속에서도 꾸준히 밀어 넣습니다.
서사분석: 복수와 사랑이 충돌하는 방식
우혁이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30년 묵은 복수를 위해 거산에 접근한 인물입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알게 됐을 때는 "흔한 복수극 공식이겠구나" 싶었는데, 드라마가 보여주는 방식이 조금 달랐습니다. 우혁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정원에게 의도적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유라가 그 증거를 정원에게 들이밀었을 때, 정원이 "그 사람을 몰랐다면 언니 말이 믿어졌을지도 모르겠죠"라고 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믿음은 논리로 성립하는 게 아니라 관계의 누적으로 형성된다는 걸 보여주는 대사였습니다.
드라마가 설정한 구조적 갈등은 정당방위(Self-Defense)의 법적 성립 요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정당방위란 타인의 위법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행한 행위로, 형법상 위법성이 조각되는 사유입니다. 우혁이 정원의 살인을 정당방위로 구성하려는 과정은 단순한 법정 드라마의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자원 집약적인 싸움인지를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결이 있었습니다. 재판이나 수사에서 결정적인 건 진실의 무게가 아니라 진실을 어떻게 '프레임'하느냐입니다. 드라마는 그 점을 꽤 정직하게 묘사합니다. 영장이 기각되고, 내부 첩자가 수사 자료를 빼돌리고, 언론이 검찰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거산 측이 사건을 관리합니다. 국내 사법 불신 지수와 관련하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상당수가 "법적 결과는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바벨은 그 인식을 드라마 언어로 정면에서 다루는 작품입니다.
드라마의 서사 구조에서 주목할 만한 캐릭터 변화는 수호입니다. 평생 현숙의 도구로 살아온 그가 마지막 주주총회에서 유라에게 자신의 모든 지분을 양도하는 선택은, 복수나 승리가 아닌 '자기 서사의 회복'에 가깝습니다. 저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가 두 발로 직접 일어서는 장면과, 이사들 앞에서 "내가 회장이 돼선 안 된다"고 말하는 장면을 연결해서 보면, 이 드라마가 결국 말하고 싶은 건 "어떤 권력을 쥐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느냐"인 것 같았습니다.
바벨을 다 보고 나서 남은 감각은 통쾌함보다 묵직함에 가깝습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방식이 드라마에서조차 그리 깔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게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권력 앞에서 사람이 어떻게 굴절되고, 또 어떻게 제 모양을 되찾는가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볼 만한 드라마입니다. 티빙, 웨이브, 왓챠에서 전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