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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문명의 취약성, 백색 실명, 인간 연대)

by haramsolution 2026. 4. 17.

정보가 많을수록 세상이 더 잘 보인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세상을 '본다'고 착각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전염처럼 퍼지는 '백색 실명'이라는 설정 하나가, 기술 뉴스 수백 편보다 훨씬 선명하게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문명의 취약성 — 가면이 얼마나 얇은지

AI와 반도체 관련 글을 쓰던 시절, 저는 늘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정보가 쌓일수록 오히려 머릿속이 공허해지는 역설이 찾아왔습니다. 그 공허함 속에서 손에 잡힌 것이 『눈먼 자들의 도시』였고, 읽는 내내 이상한 현실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소설의 설정은 단순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눈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실명은 일반적인 암흑이 아닙니다. 소설에서는 이를 '백색 실명(white blindness)'이라고 묘사합니다. 여기서 백색 실명이란 눈앞이 새하얗게, 마치 우유 속에 잠긴 듯 뿌옇게 변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까맣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흰빛으로 모든 것이 지워지는 감각입니다. 이 설정이 섬뜩한 이유는 그 실명이 전염병처럼 퍼진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감염자들을 폐쇄된 정신병원 건물에 집단 격리시킵니다. 사라마구는 이 공간에서 문명이라는 가면이 얼마나 얇은지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법과 질서, 예절, 도덕 같은 것들이 시각 하나를 잃자마자 빠르게 붕괴됩니다. 격리 공간 안에서는 음식을 독점한 집단이 폭력과 협박으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고, 복도는 배설물로 뒤덮입니다.

저는 이 구조가 재난 소설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평상시의 확대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도 우리는 타인의 불편을 비용으로 바꾸고, 보이지 않는 노동과 고통을 뒤로 밀어냅니다. 재난이 그것을 숨기지 못하게 만들 뿐입니다.

사라마구의 문체 역시 이 불편함을 배가시킵니다. 그는 환상적 사실주의(magic realism) 기법을 활용합니다. 여기서 환상적 사실주의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초자연적 설정을 도입하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심리와 사회적 반응은 철저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문학 기법입니다. 덕분에 독자는 설정의 비현실성을 잊고 이야기 안으로 빠져듭니다. 거기에 더해, 그는 마침표와 쉼표 외의 문장 부호를 일절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화와 서술이 경계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500페이지짜리 책이 실제 분량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 무게는 독자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가 읽어보니 그 불편함 자체가 소설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백색 실명 — 보이지 않는 것을 외면하는 습관

소설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은 격리 공간 안에서 무장한 집단이 여성들을 협박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부분입니다. 총 한 자루를 가진 집단이 눈먼 사람들 앞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이 장면은 읽는 내내 불편했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문학적 장치로서의 폭력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작동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이 진짜 묻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마지막 대사에서 그것이 드러납니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못하는 눈먼 사람들 말이에요." 여기서 '보지 못하는 눈먼 상태'란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감각, 즉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능력이 마비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저도 그날 인정했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이 '미래의 불확실성'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무심히 지나치는 제 습관'이라는 것을. 휴대폰을 멀리 두고 앉아 그 생각을 하던 순간이, 기술 뉴스 수백 편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라마구가 이 소설에서 비판하는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문명의 도덕성은 외부 조건이 제거되는 순간 빠르게 붕괴된다는 것
  • 권력은 정보와 자원의 독점에서 생겨나며, 약자는 그 구조 안에서 착취 대상이 된다는 것
  • 시력이 있어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실명이라는 것

이 세 가지는 재난 소설의 교훈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한 고발에 가깝습니다. 2023년 기준 국내 독자들의 디스토피아 소설 독서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인간 연대 — 빗속에서 서로의 등을 닦아주는 것

그럼에도 이 소설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직접 읽어보니, 그 이유는 작은 장면 하나에 있었습니다.

수용소를 탈출한 뒤, 온 도시가 눈먼 사람들로 가득 찬 혼돈 속에서 안과 의사의 아내는 함께 나온 일행을 집으로 데려갑니다. 유일하게 시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 모두의 옷을 벗기고 빗물로 세탁합니다. 그러다 발코니 문가에 눈먼 두 여성이 나타나고, 셋은 함께 빗속에서 서로의 등을 닦아줍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채로,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이 장면에서 사라마구는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문학적 효과를 최대치로 끌어올립니다. 여기서 카타르시스란 독자가 작품 속 인물의 고통과 정화를 함께 경험하며 감정적으로 해소감을 얻는 것을 뜻합니다. 극도로 끔찍한 장면들을 지나온 뒤에 등장하는 이 세 여성의 웃음소리는,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남습니다.

또한 이 장면에서 연대(solidarity)의 의미도 다시 정의됩니다. 여기서 연대란 같은 처지, 같은 계층,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결속이 아닙니다. 서로 어울릴 일 없었던 사람들이, 서로의 눈이 되어주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온기의 본질이라고, 사라마구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라마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 소설의 윤리적 복잡성은 여전히 논의 대상입니다. 폭력 묘사가 독자에게 감당하기 어렵게 작동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출처: 노벨위원회). 그 비판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을 덮어두면, 우리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더 효율적인 무관심만 발명할지 모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유쾌한 소설이 아닙니다. 읽는 내내 불편하고, 어떤 장면은 쉽게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내면 이상한 정화감이 찾아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두꺼운 책이 주는 성취감이 아니라, 내가 외면해 온 무언가를 직면했을 때의 감각에 가깝습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도 '보지 못했다'고 말할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그 용기를 조용히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_k7qtJno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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