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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폐지 압축공, 독서 의식, 자동화)

by haramsolution 2026. 4. 6.

35년째 지하실에서 폐지를 압축하는 한 남자가, 쏟아지는 종이더미 속에서 빛나는 책 한 권을 건져 문장 냄새를 들이마신다.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그 단순한 장면 하나로 저의 하루를 멈춰 세운 소설입니다. 숏폼과 알고리즘 피드에 지쳐있던 차에 이 이야기를 접하고, 한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폐지 압축공, 독서 의식, 자동화)
너무 시끄러운 고독 (폐지 압축공, 독서 의식, 자동화)

폐지 압축공 한탸가 35년간 지킨 독서 의식

주인공 한탸가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지하실 천장의 통로에서 폐지가 쏟아져 내리면 이것을 모아 압축기 위에 올리고, 버튼 두 개로 눌러 꾸러미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단조로운 노동을 35년째 이어오면서, 남들이 보기엔 그냥 폐지일 것들 속에서 책을 건져냅니다.

그가 꾸러미를 만드는 방식은 일반적인 폐지 처리와 전혀 다릅니다. 압축된 덩어리 한복판에는 괴테나 니체, 횔덜린의 책이 활짝 펼쳐진 채 들어가고, 꾸러미 겉은 렘브란트나 클림트 같은 유럽 화가들의 복제화로 포장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 그에게는 일종의 제의적 행위(ritual act)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의적 행위란 반복되는 행동에 상징적인 의미와 형식을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탸에게 꾸러미 하나하나는 예술 작품이고, 그 작업은 매일 치르는 의례입니다.

한탸가 가진 소박한 꿈도 인상적입니다. 5년 뒤 은퇴할 때 이 압축기를 사서, 하루에 단 한 개의 꾸러미만 정성스럽게 만들며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꿈을 "너무 소박하지 않냐"고 느낄 수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 부분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단단한 문장처럼 읽혔습니다. 효율과 속도가 전부인 세상에서, 하루 한 개만 만들겠다는 선언은 꽤 급진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형용 모순이 담긴 제목, '시끄러운 고독'의 의미

소설 제목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모순어법(oxymoron)을 사용한 표현입니다. 모순어법이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서로 상반되는 단어를 나란히 붙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이 제목은 단순히 문학적 장식이 아니라, 소설 전체의 구조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한탸는 분명 혼자 살고 혼자 일합니다. 그런데 그 고독이 고요하지 않습니다. 압축기는 굉음을 내고, 소장은 뚜껑문을 열어 고함을 지르고, 지하실에는 쥐와 파리떼가 들끓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이건 지금 제 상황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방에 앉아 있어도 스마트폰 알림 소리, 유튜브 자동 재생, SNS 피드가 끊임없이 몰려들지 않습니까. 혼자지만 전혀 고요하지 않은 삶입니다.

소설 후반부에는 이 시끄러움이 더 거대해집니다. 한탸가 손으로 눌러온 수공 압축 방식이 거대한 공장 시스템으로 대체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유니폼을 입은 노동자들이 콜라와 우유를 마시며 폐지의 의미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기계처럼 처리합니다. 이 장면은 저에게 단순한 산업화 비판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가 '처리되어야 할 양'으로만 취급받는 지금의 분위기를 정확히 묘사한 것처럼 읽혔습니다.

체코 공산주의 체제와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실존적 배경

이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작가의 배경을 조금 알아두는 편이 좋습니다. 보후밀 흐라발은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었지만, 체코가 공산주의 체제에 들어서면서 대학들이 줄줄이 폐쇄되자 법률가의 길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후 그는 철도 수송공, 보험 설계사, 폐지 압축공 등 다양한 노동 현장을 전전했습니다. 한탸가 하는 일은 흐라발이 직접 경험한 노동이기도 합니다.

흐라발의 소설들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검열과 탄압을 받았고, 지하 출판물(samizdat, 사미즈다트) 형태로 유통되기도 했습니다. 사미즈다트란 공식 검열을 피해 개인이 손으로 베끼거나 비밀리에 인쇄해 나눠 읽던 출판 방식을 말합니다. 체제가 허용하지 않는 책을 그렇게 살아남게 했다는 점에서, 소설 속 한탸가 폐지 속에서 책을 건져 살리는 장면과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소설에는 집시 여인의 에피소드가 짧게 등장합니다. 한탸가 젊었을 때 잠깐 함께했던 여인인데, 어느 날 따라 들어오지 않아 알아보니 나치 게슈타포에 의해 다른 집시들과 함께 소각로에서 살해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단 몇 줄의 서술이지만, 이 장면이 소설 전체에 깔린 폭력과 소멸의 정서를 단번에 각인시킵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이 에피소드 직후의 문장들이 훨씬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한탸가 책을 '상냥한 도살자'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는 매일 희귀한 책들을 압축기에 넣어 죽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책들로 살아갑니다. 이 아이러니야말로 흐라발이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묘사한 핵심이라고 봅니다.

흐라발은 체코 문학의 정전(canon)으로 여겨지는 작가입니다. 정전이란 특정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중요하다고 인정받아 온 고전 작품 목록을 말합니다.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글을 쓴 반면, 흐라발은 체코어로만 작업했습니다. 그래서 체코 독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카프카나 쿤데라보다 더 친밀하게 받아들여진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AI 자동화 시대에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

여기서 잠깐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책을 천천히 읽는 것은 사치다. 요약본이나 AI 요약으로 핵심만 빠르게 뽑아내는 게 더 효율적이다"라고 보는 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 방식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써보니 이건 좀 다릅니다. AI 요약으로 얻은 정보는 머릿속에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반면 한 문장을 붙잡고 오래 생각하며 읽은 날은, 며칠이 지나도 그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정보 처리량(throughput)과 이해 깊이(depth of comprehension)는 다른 개념입니다. 처리량이란 단위 시간 내에 소화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말하고, 이해 깊이란 그 정보가 자신의 사고와 감각에 얼마나 깊이 연결되었는지를 나타냅니다.

한탸가 압축기로 책을 처리하는 장면과, 소설 후반의 대형 공장이 폐지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장면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탸는 속도가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그 느림 속에서 텍스트가 자신의 혈관까지 스며드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공장은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의미는 사라집니다.

실제로 인문학적 리터러시(humanities literacy), 즉 텍스트를 읽고 맥락을 파악하여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AI 시대에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 창의적 사고력과 비판적 독해 능력이 자동화로 대체되기 어려운 핵심 역량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OECD).

이와 관련하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역시 미래 역량으로서 텍스트 기반 사고력과 서사적 이해 능력의 중요성을 교육 정책 방향에 반영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결국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압축됩니다.

  • 더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 느리지만 자기만의 '독서 의식'을 지키는 사람이 될 것인가
  • 지식을 소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지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저는 이 질문에 아직도 명쾌한 답을 못 내리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에 단 한 문장이라도 오래 붙잡아 두는 쪽이, 저에게는 더 오래 남는다는 건 경험으로 압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독서론이나 저항 문학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저는 이 소설이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삶보다 혼자 은둔하며 텍스트 속에서 작은 기쁨을 찾는 분이라면 특히 1장부터 마음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래 천천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E0J-bpSs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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